30곳 찜닭 골목은 어떻게 생겼나…안동 찜닭 40여 년

안동 구시장 내 약 30곳의 찜닭점들이 만드는 ‘찜닭골목’은 한 도시의 음식 문화가 어떻게 탄생하고 정착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1970년대 통닭골목에서 시작해 1980년대에 당면과 간장 양념으로 진화한 이 음식은, 단순한 요깃거리가 아니라 유교 문화의 중심지 안동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헛제사밥, 간고등어와 함께 “제약에서 만들어진 음식 정체성”의 사례다. 찜닭이 처음 등장한 1980년대 초중반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로 40여 년이다.
찜닭은 정말 1980년대에 태어났나?
1970년대 안동 구시장에는 생닭과 튀김 통닭을 판매하는 ‘통닭골목’이 이미 있었다. 그 골목에서 음식의 변신이 일어났다. 1980년대 초중반, 구시장의 닭 판매점들은 통닭에 당면, 고춧가루, 개량간장을 더해 찜·찌개·탕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유래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한 가지는 당시 구시장의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다. 안동교육대학(현 국립안동대학교의 일부)과 육군안동훈련소로 젊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저렴하고 푸짐한 음식이 필요했다. 다른 해석은 시장의 대응이다. 1980년대 양념치킨이 유행하자, 통닭 상인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갈비찜 양념에 당면과 채소를 더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 음식은 현재의 형태로 완성됐다. 감자, 당근, 파, 양파, 양배추, 물엿, 설탕이 더해지면서, 매콤달콤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의 요리가 확립됐다.
왜 안동에서, 왜 그렇게 팔렸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안동의 인구 구조가 찜닭의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교육대학과 훈련소의 존재로 젊은 세대와 학생, 군인들이 집중됐다. 이들은 저렴하면서도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을 원했고, 찜닭은 그 수요를 정확히 충족했다. 닭 한 마리에 당면과 야채를 더하면 여러 사람이 나눌 수 있었고, 가격 부담도 크지 않았다.
“서민 음식”으로서의 정체성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찜닭은 안동을 넘어 전국 어느 도시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구시장의 통닭골목은 ‘찜닭골목’으로 이름을 바꿨고, 지금 이 골목은 안동을 찾는 여행자들이 즐겨 들르는 대표 음식 골목이 되었다.
찜닭 옆의 안동 밥상은?
안동 음식 문화의 다른 두 기둥을 보면, 찜닭이 어떻게 그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헛제사밥은 유교 문화의 중심지 안동을 상징한다. 제사 음식과 동일한 재료로 평상시에 비빔밥 형태로 먹는 음식이다. 무채, 콩나물, 고사리 등 나물과 탕, 전, 간고등어 조각으로 정중한 상차림을 이루는데, 헛제사밥이 식당 음식으로 상업화된 것은 1978년경으로 전해진다.
간고등어는 지리의 제약에서 비롯한 음식이다. 안동은 동해 영덕에서 약 80km 떨어진 내륙이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고등어를 하루 이상 운반하다 보면 고기가 염장되고 숙성되면서 비린내가 사라졌다. 문제가 지혜로 바뀐 것이다.
구시장 내 보리밥 골목도 50년 이상 운영되고 있다. 찜닭, 헛제사밥, 간고등어, 보리밥. 네 음식 모두 젊은 인구 집중, 유교 제례 문화, 내륙이라는 거리, 시간의 흐름이라는 제약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것들이 안동의 음식 정체성을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