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갈비’가 시대의 음식이 되기까지 — 춘천 닭갈비 60여 년

1960년대 초 춘천 중앙로 선술집에서 돼지갈비 대신 닭을 양념해 숯불에 구워 팔던 “닭불고기”에서 시작한 음식이 있다. 1970년대 철판 위에서 양배추, 감자, 가래떡을 곁들인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고, “서민갈비”라는 별명으로 군인과 대학생 사이에 퍼져나간 춘천 닭갈비다. 60여 년 역사를 거친 이 음식은 2026년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의 5일 정례화로, 호반 도시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닭불고기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반, 강원도 춘천 중앙로의 선술집들에서는 특이한 안주가 나왔다. 당시 고가의 음식이던 돼지갈비 대신 저렴한 닭고기를 같은 양념에 재워 숯불에서 구워낸 “닭불고기”였다. 춘천 지역에서 양계가 성했던 점과도 맞아떨어졌다. 이 요리에는 당시 지역 음식 문화의 경제성과 실용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역N문화 공식 기록에는 “춘천에서 최초로 닭갈비를 만든 식당”이 1960년대 원조숯불닭불고기로 명명되어 있다. 기록에 상호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원조 식당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다. 춘천이 닭갈비의 발상지라는 이 기록은 이후 60년간 이 음식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는 길을 닦았다.
숯불에서 철판으로
1960년대 후반, 닭불고기는 이름과 조리법을 동시에 바꿨다. 숯불에서 철판 위로 무대를 옮기고, “춘천닭갈비”라는 정식 명칭을 얻었다. 야외의 연탄불 구이에서 실내 철판 조리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었다. 음식을 제공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겨울철에도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음식으로 만든 전환이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춘천닭갈비는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철판 위에 양배추, 감자, 가래떡을 한데 넣고 함께 볶으면서 지금의 형태가 정착되었다. 양배추의 아삭함, 감자의 포만감, 가래떡의 쫄깃한 식감이 고추장·간장 양념과 어우러져, 한 판을 여럿이 나눠 먹는 공동 식사 문화를 만들어냈다. 경제성과 맛의 밸런스를 맞춘 이 형태는 이후 수십 년간 변하지 않으며 춘천의 음식 정체성이 되었다.
이렇게 철판이라는 조리 도구는 닭갈비를 음식에서 문화로 격상시켰다. 한 판의 음식을 여러 사람이 함께 집게로 집어 먹는 방식은, 개인의 끼니를 넘어 공동체의 식사 방식이 되었다. 돼지갈비의 1/3 가격대의 닭고기를 같은 양념과 조리 방식으로 다뤘을 때, 맛과 경제성이 만나 대중 음식의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명동 뒷골목의 서민갈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 춘천 명동 중앙로 뒷골목에는 닭갈비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리적으로 도심의 젊은 인구가 집중한 곳, 인근에 대학과 군부대가 있던 자리였다. 철판 형태가 대중화되고, 저렴한 가격으로 집단 수요가 일어나자, 골목은 자연스럽게 닭갈비 거리로 변모했다.
당시 닭갈비는 두 가지 별명을 얻었다. “서민갈비”, “대학생갈비”라는 이름들이다. 일반 갈비의 3분의 1 수준의 가격에 푸짐한 양을 제공했기에, 소득 제약이 있는 대학생과 군인들이 즐겨 찾았다. 이 음식은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갈비”를 대중화한 경제적인 음식이자, 동시에 호반 도시의 젊은 세대를 하나로 묶는 문화 기호였다. 현재 명동 닭갈비 골목에는 20여 곳의 가게가 밀집해 있으며, 각 가게마다 수십 년 경험을 쌓은 조리법을 간직하고 있다.
명동 뒷골목은 1970년대 이후 춘천의 가장 활력 있는 식문화 공간이 되었다. 촉촉한 야채 향과 고추장 양념의 매콤한 향기가 좁은 골목에 가득했고, 철판 위에서 ‘지지직’ 소리를 내는 음식이 도시의 밤을 물들였다. 부담 없는 한 끼 가격으로 대학생들의 주머니 걱정을 덜어 준 이 거리는, 춘천이라는 지역의 정체성 자체가 되어갔다.

양계와 도계장 — 음식을 받친 산업
춘천 닭갈비의 형성과 확산이 가능했던 이유를 추적하면, 지역 양계 산업에 닿는다. 춘천 남산면, 동면, 사북면, 남면 등지에서는 오랫동안 양계가 성해왔다. 저렴하고 신선한 닭고기의 안정적 수급은 닭갈비가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는 토대였다.
1984년 춘천에 도계장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이 연결고리는 더욱 공고해졌다. 도계장은 지역 양계 산업의 후방 지원 인프라로, 신선한 닭고기를 일관되게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닭갈비는 단순한 음식 하나에서 지역 양축산 산업과 맞닿은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진화했다.
막국수와 함께, 축제가 되다
춘천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음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인조시대 이래로, 특히 춘천 지역에서 겨울 밤참으로 즐겨먹던 막국수다. 매콤한 닭갈비 다음, 차가운 메밀막국수를 마시는 것은 온도와 맛의 대비를 즐기는 것을 넘어, 역사(막국수)와 근현대(닭갈비)의 음식 문화를 한 끼에 담는 행위다. 이 세트 음식 문화는 축제로 공식화되었다.
2025년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는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공지천 하천 일대에서 개최되었다. 2026년에는 개최 기간이 5일로 확대되고(10월 14~18일), 10월로 정례화된다는 공식 방침이 확정되었다. 이는 축제가 더 이상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춘천의 연중 고정 일정으로, 나아가 호반 도시의 정체성 자체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명동의 20여 곳 닭갈비 거리, 막국수 식당들, 주변 숙박과 교통 산업까지, 이 축제는 지역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문화 이벤트가 되었다.
60여 년 역사를 거친 춘천 닭갈비는 더 이상 선술집의 안주나 대학생의 끼니가 아니다. 호반 도시의 음식 정체성이자, 계절마다 지역민과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문화 자산이 되었다. 1960년대 초 “닭불고기”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시작한 이 음식이, 60년을 지나 축제 정례화라는 공식 지위를 얻기까지, 그것은 춘천이 추적해온 지역 음식 문화의 궤적이자, 호반 도시라는 정체성이 음식과 만날 때 만들어지는 가능성의 기록이다.

| 시기 | 단계 | 주요 내용 | 배경 |
|---|---|---|---|
|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 닭불고기 탄생 | 선술집에서 돼지갈비 대신 닭을 양념해 숯불에 구움 | 닭고기의 저렴성, 춘천 양계 산업 |
| 1960년대 후반 | 이름 정식화·조리 전환 | “춘천닭갈비” 명칭, 숯불에서 철판으로 변경 | 조리 환경 개선, 대중화 |
| 1970년대 | 현 형태 완성 | 양배추·감자·가래떡 추가, 공동 식사 문화 정착 | 재료 다양화, 경제성 확보 |
| 1970~1980년대 | 명동 골목 형성 | 명동 뒷골목에 20여 곳 가게 집중, “서민갈비” 별칭 | 대학생·군인 수요, 지리적 요소 |
| 1984년 | 도계장 영업 시작 | 춘천 도계장 개시, 양계 산업 지원 | 산업 인프라 구축 |
| 2025년 | 축제 4일 개최 |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 (10월 16~19일) | 음식 문화 공식화 |
| 2026년 | 축제 정례화·확대 | 축제 5일 확대 (10월 14~18일), 10월 정례화 확정 | 호반 도시 정체성, 문화 산업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