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학의 새 형식”…노벨문학상에 캐나다 작가 앤 카슨

스웨덴 한림원이 8일(현지시간)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캐나다 작가 앤 카슨(76)을 선정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같은 날 오후 8시다.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고전 전통과 유희적으로 대화하며 현대 문학에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낸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라고 밝혔다(영문 원문은 본지 번역).
카슨은 노벨문학상 123번째 수상자이자 19번째 여성 수상자다. 공동 수상자 없이 혼자 받는다. 상금은 1,200만 스웨덴 크로나로 2024·2025년의 1,100만 크로나보다 100만 크로나 늘었다. 국내에는 『빨강의 자서전』 등 9종이 번역돼 있다.
운문 소설·상자 속 비문·순서 없는 소책자 22권, 한림원이 짚은 형식들
한림원 선정문의 핵심어는 “새로운 형식”이다. 작품 해설을 쓴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위원회 위원장은 카슨의 거의 모든 작업이 “단어에 대한 문헌학자의 집착과 새 의미를 향한 시인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왔다고 적었다. 카슨은 1981년 토론토대에서 고전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대학 강의와 번역을 병행하며 시를 썼다. 한림원 해설은 사포 단편과 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 비극 번역도 작품 목록에 함께 올렸다. 카슨 스스로 단어의 어원을 모든 작업의 출발점으로 짚었다고도 해설은 적었다.

해설이 든 사례는 하나씩 읽으면 서로 다른 책이다. 1995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에 실린 「유리 에세이」는 운문으로 쓰였는데, 이야기는 슬픔과 짝사랑이고 에밀리 브론테 읽기가 겹치면서 버림받음에 관한 에세이로 바뀐다. 한림원은 이 작품이 “장르 경계가 흐려지는 장시”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1998년 『빨강의 자서전』은 운문으로 쓴 소설이다. 스테시코로스 단편에 나오는 괴물 게리온을 어머니에게 헌신하는 다정한 ‘영웅’으로 다시 쓴 현대판 성장소설이다. 2010년 『녹스』는 2000년 덴마크에서 숨진 오빠 마이클을 기린 책으로, 사진과 편지, 글을 아코디언처럼 접어 상자에 담은 비문이다. 2016년 『플로트』는 주제가 서로 다른 소책자 22권이고, 어떤 순서로 읽어도 된다.
형식의 실험은 책 밖으로도 이어졌다. 한림원 해설에 따르면 카슨은 시각예술가, 안무가, 오페라·연극 연출가와 협업해 왔고, 2024년 『Wrong Norma』는 공연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해설은 이런 작업이 1990년대 이후 국제 예술·문학계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시와 소설, 에세이, 번역, 조각에 가까운 상자가 한 사람의 작품 목록에 나란히 올라 있다. 다만 이 목록은 상을 주는 쪽이 정리한 설명이다.
“분류할 수 없는 상상력”…정작 작가는 “의도치 않았다”
한림원 밖에서 나온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카슨을 두고 “분류할 수 없는 상상력”이라고 했다. 시인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 철학자이고 삶의 부침을 지켜보는 관찰자라는 말이 뒤에 붙었다. 토론토대 고전학과의 앨리슨 키스 교수는 카슨이 “쓰는 모든 형식에서 장르를 갖고 논다”고 했다.

정작 카슨 본인은 이를 기획된 실험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노벨 프라이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기 작업을 “의도치 않은 것”이라고 부르며 “언제나 다른 것을 하려는 중”이라고 말했다. 고전이 오늘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현재성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인지가 궁금하다고 답했다.
카슨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바닷가 자택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 발표를 맡은 잉그리드 칼베리 한림원 상임사무총장은 카슨이 놀랐지만 기뻐했다고 전했다. 작가가 의도치 않게 나왔다고 말한 이 작품들 가운데 9종은 한국에서 이미 읽히고 있다.
노벨문학상 앤 카슨의 국내 번역서 9종, 원서 뒤 최장 39년 만에 도착
알라딘 서지로 10월 9일 확인한 국내 번역서는 출판사별로 난다 4종, 한겨레출판 3종, 봄날의책 2종이다. 첫 책은 2016년 1월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빨강의 자서전』과 『남편의 아름다움』이다. 이후 2019년 『레드 닥>』, 2021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과 『짧은 이야기들』, 2022년 『녹스』, 2023년 『플로트』, 2025년 『에로스, 달콤씁쓸한』과 『플레인워터』가 이어졌다. 9종 가운데 6종이 2021년 이후에 나왔다.

원서에서 국내판까지는 짧게는 6년(『레드 닥>』 2013년→2019년), 길게는 39년이 걸렸다. 가장 오래 걸린 『에로스, 달콤씁쓸한』은 1986년 원서가 나온 책으로, 한림원 해설이 이후 저작의 토대로 꼽은 책이다. 역자 황유원에 따르면 국내판 『빨강의 자서전』에는 “운문으로 쓴 장편소설”, 『남편의 아름다움』에는 “소설적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국내판 4종을 옮긴 시인 황유원은 “앤 카슨의 장르는 그냥 ‘앤 카슨’이다”라고 썼다. 그 4종을 낸 출판사 난다의 대표인 시인 김민정은 \”13~14년 전부터 카슨의 작품을 내려고 많이 노력했다\”며, 카슨이 \”쉬운 작가는 아니지만\” 자기 글쓰기를 끊임없이 보여 주려 한다고 말했다.
카슨은 인터뷰에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 보내는 권유도 남겼다. “가운데부터 시작하라. 내가 가진 유일한 규칙이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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