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얼음 1㎦로 무엇을 찾았나…34년 만의 단독 노벨 물리학상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6일(현지시간) 202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프랜시스 할전(Francis Halzen)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교수를 선정했다. 수상 사유는 ‘IceCube 중성미자 관측소에 대한 결정적 기여와 천체물리학적 기원의 고에너지 중성미자 발견’이다. 상금은 1,200만 스웨덴 크로나다.
단독 수상은 1992년 조르주 샤르파크 이후 34년 만이다. 1993년부터 2025년까지 33회는 전부 2~3인 공동 수상이었다. 82세의 할전은 발표 직후 전화 연결에서 “크게 놀랐고, 당연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상 사유의 순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관측소 구축이 앞에, 발견이 뒤에 놓였다. 이번 상이 한 번의 발견보다 얼음 속에 망원경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에 무게를 실었다고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수상 사유 뒷부분에는 고에너지 중성미자 발견도 명시돼 있다.
할전은 남극 얼음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답은 우주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중성미자다. 2013년 IceCube 연구진은 2010년 5월부터 2012년 5월까지 2년 치 데이터에서 에너지가 1.04 PeV와 1.14 PeV인 사건 2건을 찾아 우주 기원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첫 증거로 보고했다. PeV는 1,000조 전자볼트다. 같은 데이터에서 30 TeV에서 1.14 PeV 사이의 사건 28건이 추려졌다.
‘중성미자를 처음 봤다’는 뜻은 아니다. IceCube는 지구 대기에서 생긴 중성미자를 해마다 약 10만 개 잡아낸다. 우주에서 온 것은 그 가운데 연 100개 안팎으로 기대된다. 10만 개의 소음 속에서 100개의 신호를 가려내는 일이었다. 2014년에는 2010~2013년 데이터로 모든 신호를 대기 기원으로 설명하는 가설을 5.7σ 수준에서 기각했다. σ(시그마)는 통계적 유의도의 단위로, 입자물리학에서는 관례상 3σ 이상을 ‘증거’, 5σ 이상을 ‘발견’으로 친다.
노벨 물리학위원회 마크 피어스 위원장은 보도자료에서 할전이 “환상적인 장비”를 만들어 준 국제 연구진을 이끌었고, 그 “끈기와 비전이 새로운 천문학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왜 1㎦ 얼음에 센서 5,160개를 심어야 했나
중성미자는 전하가 없고 질량도 거의 없어 물질을 대부분 그대로 통과한다. 태양에서 오는 중성미자만 해도 매초 650억 개가 새끼손톱 크기의 면적을 지나간다. 이런 입자는 아주 드물게 원자핵과 부딪히고, 그때 생긴 하전입자가 푸른 체렌코프 빛을 낸다. 이 빛을 잡아내야 중성미자가 지나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부딪힘이 드문 만큼 표적이 커야 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중성미자를 잡으려는 건 이 입자가 출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주선(대부분 양성자)은 전하를 띠어 자기장에 휘고, 그래서 어디서 왔는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같은 가속 과정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는 휘지 않는다. 우주의 자연 가속기는 지구 실험실보다 최대 100만 배 높은 에너지를 낸다. 감마선은 오는 길에 빛이나 물질과 상호작용해 줄어들지만 중성미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IceCube는 남극 얼음 1㎦, 약 10억t을 통째로 검출기로 쓴다. 깊이 1,450~2,450m에 케이블 86개를 내리고 광센서 5,160개를 달았다. 할전은 이 센서를 빛을 받아 전기신호로 바꾸는 ‘거꾸로 된 전구’에 비유했다. 깊은 얼음은 늘 어둡다. 생물이 간섭하지 않고 방사성 물질이 적은 데다 지진도 없다.
구상부터 수상까지 38년, 어떤 단계를 거쳤나
시작은 1988년 6월이다. 할전과 존 러니드가 ‘High-energy neutrino detection in deep polar ice’라는 프리프린트를 내고 폴란드 학회에서 개념을 처음 발표했다. 1992년 연구진이 남극 빙하에 광센서를 내려보내는 첫 시도를 했고, 전신인 AMANDA를 1993년부터 2000년 1월까지 지었다. 이 과정에서 상층부는 기포 때문에 빛이 흩어지지만 1,400m 아래는 극히 투명해 섬광이 300m를 나아간다는 점이 확인됐다.
IceCube 제안서는 1999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제출됐다. 자금 승인은 2002년 3월, 건설 착수는 2004년이었다. 남극에서 작업할 수 있는 시기는 11월부터 2월까지의 여름뿐이다. 86개 케이블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설치됐고, 2011년에 완공됐다. 구상에서 수상까지 38년, 완공에서 수상까지 15년이다.
| 연도 | 내용 |
|---|---|
| 1988 | 얼음 속 중성미자 검출 개념 첫 발표 |
| 1993~2000 | 전신 AMANDA 건설, 1,400m 아래 얼음 투명도 확인 |
| 2002 | NSF 자금 승인 |
| 2005~2010 | 케이블 86개 설치 |
| 2011 | 완공 |
| 2013 | 우주 기원 고에너지 중성미자 첫 증거 |
| 2017 | 블레이자 TXS 0506+056 방향 중성미자 포착 |
| 2022 | NGC 1068 방향 중성미자 79개, 4.2σ |
| 2023 | 우리은하 고에너지 중성미자 첫 보고, 4.5σ |
| 2026 | 12년 치 데이터로 우리은하 5.7σ, 노벨 물리학상 |
자료: 노벨위원회(Popular information·Scientific background), IceCube
국내 학자들의 회고도 이 38년을 비슷한 결로 그린다. 양운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핵입자천체물리연구소장)는 2001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할전의 구상 설명을 직접 들었다고 했다. 당시 할전은 학계 원로였는데도 구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미국 정부와 주요 대학, 연구소를 찾아다녔고, 그 모습이 “30대 같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할전을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 불렀다. 박일흥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할전이 “10년 넘게 거대한 연구집단을 이끌며 소통과 리더십”으로 존경받았다고 말했다.
우주 중성미자의 근원은 다 밝혀졌나
아직이다. 우주 기원 중성미자의 존재는 확인됐지만 어디서 만들어지는지는 대부분 증거 단계에 있다. 2022년 NGC 1068(약 4,600만 광년 거리의 은하) 방향에서 중성미자 79개가 4.2σ로 잡혔지만, 노벨위원회 대중 해설은 이를 “확정적 근원으로 보기엔 증거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고 적었다. 올해 12년 치 데이터에서 우리은하가 5.7σ를 넘어 5σ 기준을 통과한 첫 사례가 됐지만, 특정한 점 하나가 근원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감마선폭발 1,000회 이상을 뒤쫓았을 때 동시에 잡힌 중성미자는 0건이었다.
IceCube 공동연구단의 에린 오설리번 대변인도 할전이 “첫 발견에서 확실한 검출로” 넘어가는 분야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할전은 IceCube 발표에서 “이 훌륭한 공동연구단이 받아야 할 인정을 마침내 전하게 돼 안도한다”고 했다. 연구단은 과학자 450명 이상, 58개 기관, 14개국으로 이뤄졌고, 1988년 개념을 함께 발표한 러니드는 수상자가 아니다.
한국과의 접점도 있다. IceCube 참여기관 목록(2025년 4월 기준)에는 중앙대와 성균관대 물리학과가 올라 있고, 건설 자금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이 명시돼 있다. 구체적인 기여 규모는 공개된 자료에 없다. 양운기 교수는 할전을 두고 우주에서 온 중성미자를 남극 얼음으로 검출해 낸 연구자로, 물리천문학계의 “기념비적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IceCube는 지금도 확장 중이다. 2025~2026년 설치 중인 IceCube Upgrade는 완공 15년 만의 첫 대규모 확장이다. 에너지 문턱을 낮추고 얼음 보정을 개선하는 장비로, 첫 과학 데이터는 올해 말 나올 예정이다. 이후 계획인 IceCube-Gen2는 광학 배열 부피를 8배인 8㎦로 키우고 전파 검출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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