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은 왜 남도 백반의 본고장이 됐을까

한 상에 밥·국·찌개를 놓고 반찬을 10첩, 20첩씩 올리는 남도 백반. 그 밥상의 본고장으로 전남 강진이 꼽힌다. 산과 바다와 강이 한자리에 모인 땅, 유배 온 학자가 500권의 책을 남긴 고장, 조선 500년 군영이 있던 마을이 저마다 다른 맛을 길러냈다. 강진의 밥상에는 그 내력이 함께 차려진다.
남도의 부엌이라 불린 땅
강진은 예부터 “남도의 부엌”으로 불렸다. 이유는 지형에 있다.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그 사이를 탐진강이 가른다. 산에서는 나물과 버섯이, 강에서는 민물고기가, 바다에서는 온갖 해산물이 났다. 한 고장에서 이렇게 다른 성격의 식재료가 모이는 곳은 흔치 않다.
이 풍요는 문화도 불러들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을 유배로 보냈고, 그중 11년을 다산초당에서 지내며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비롯해 500여 권을 써냈다. 유배객마저 학문을 꽃피운 이 땅의 넉넉함이, 상을 가득 채우는 남도 백반의 바탕이 됐다.

병영 돼지불고기, 군영이 남긴 맛
강진에서 백반만큼 이름난 것이 병영면의 돼지불고기다. 이 음식에는 군영의 역사가 배어 있다. 병영면에는 1417년 축조돼 갑오개혁 때까지 전라도와 제주를 아우른 육군 지휘부, 전라병영성이 있었다. 호남 최대의 군사도시였던 만큼 사람과 물자가 모였고 장이 섰다.
돼지불고기는 새로 부임한 병마절도사가 집안 어른인 강진현감을 극진히 대접한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이후 병영의 장터에서 별미로 자리 잡았다. 연탄불에 매콤하게 구워낸 불맛이 지금도 병영 돼지불고기거리의 간판이다. 이 마을에는 1653년 표착한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정착했던 흔적도 남아, 돌 사이에 흙을 채운 옛 담장을 아직 볼 수 있다. 밥 한 끼에 군영과 이국의 사연이 겹쳐 있는 셈이다.
갯벌과 장(醬)이 완성하는 한 상
강진 백반의 반찬을 떠받치는 두 축은 갯벌과 장이다. 강진만은 탐진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으로, 약 66만㎡의 갈대 군락과 26㎢에 이르는 갯벌을 품는다. 짱뚱어, 바지락, 개불 같은 갯벌 산물이 반찬으로 오른다.
여기에 남도 특유의 장류가 더해진다. 강진의 대표 먹거리를 꼽은 ‘강진10미’에는 강진 전통 된장이 이름을 올린다. 된장의 감칠맛과 젓갈의 풍미가 반찬 하나하나에 깊이를 더한다. 간을 세게 하지 않고 가짓수와 재료의 신선도로 승부하는 것이 강진 백반의 방식이다. 짱뚱어탕, 회춘탕, 마량항의 생선회, 옴천의 토하젓 같은 향토 음식도 같은 갯벌과 장 문화에서 나왔다.

백반 한 상과 함께 걷는 강진
강진을 찾는다면 밥상만 보고 오기엔 아깝다. 병영면에서는 전라병영성과 옛 담장길을 걷고 돼지불고기거리에서 한 끼를 든다. 강진읍 시장 골목에서는 제철 반찬을 올린 백반 한 상을 받을 수 있다. 다산초당에 올라 정약용의 유배지를 둘러보고, 강진만생태공원의 갈대밭을 거니는 것도 좋다. 남도 백반은 한 그릇의 음식이 아니라, 강진이라는 고장의 자연과 역사를 한 상에 옮겨 담은 결과다. 강진을 여행한다는 건 그 상을 통째로 맛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