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만 곳 10인 미만까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 추진

정부가 10월 29일 관계부처 합동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내고, 퇴직금을 회사 밖 금융기관 등에 쌓아 두는 사외적립을 2028년 100인 이상, 2029년 10~99인, 2030년 10인 미만 사업장 순으로 의무화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11월 중 개정안을 마련해 연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며, 연내 통과하면 1년의 준비 기간을 둔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도 같은 방안에 담겼다.
체불 임금의 41%가 퇴직금…정부가 ‘회사 밖 적립’을 꺼낸 이유
정부가 근거로 든 숫자는 임금체불이다. 고용노동부는 2025년 전체 임금체불액 가운데 퇴직금이 41.1%, 8,229억 원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밀린 임금 가운데 퇴직금 몫이 그만큼 크다. 사외적립은 퇴직금을 회사 금고에서 금융기관 금고로 옮겨 두는 일이다.
정작 퇴직연금은 사업장에 잘 퍼지지 않았다.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2024년 26.5%로, 최근 10년간 26~27%대에서 제자리다. 노동자 가입률도 53%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정부는 2월 6일 노사정 공동선언을 구체화한 결과가 이번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사용자에게는 새 비용으로 보일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10월 30일 설명자료에서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의무화가 “새로운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원래 지급의무가 있는 퇴직급여를 재직 중 미리 적립”하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쌓인 과거 근속분을 한꺼번에 적립할 필요도 없다. 사외적립 의무는 각 단계 시행 이후에 생기는 근속기간부터 적용된다.
지급 의무가 같다면 달라지는 것은 돈이 나가는 시점이다.
3단계 대상 210만 곳 중 177만 곳이 10인 미만
방안에 담긴 대상 사업장 수는 2024년 사업체노동실태현황 기준이다. 2028년 1월 1단계인 100인 이상이 1만 8,319곳, 2029년 1월 2단계인 10~99인이 31만 9,231곳, 2030년 1월 3단계인 10인 미만이 176만 7,543곳이다. 누적 수치가 아니라 단계별 사업장 수이고, 세 값을 합친 약 210만 곳 가운데 10인 미만 비중은 84.0%다(본지 계산).
3단계는 가장 늦게 시행되지만 대상 사업장은 가장 많다. 도입 현황에서도 이 쏠림이 드러난다. 2024년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도입률은 92.1%인데 5~9인은 32.7%, 5인 미만은 10.6%에 그친다. 30인 미만 사업장 전체로 보면 23.2%다. 새로 적립을 시작해야 하는 사업장은 대부분 직원이 열 명이 안 되는 곳이다.

미도입 사업장에는 의무화 이후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에 자동 가입시키되, 일정 기간 안에 탈퇴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탈퇴할 수 있는 기간의 길이는 방안에 나와 있지 않다. 푸른씨앗 가입 대상은 2028년 1월 300인 사업장까지 넓어진다.
미도입 사업장 52.5% 부담, 80.1%는 3년 안에 준비…엇갈린 영세 사업장
정부가 인용한 근거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 실태조사다. 퇴직연금을 아직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 1,500곳을 대상으로 2026년 4~7월 설문을 벌였고, 응답 사업장의 90.3%가 10인 미만이었다. 이 조사는 퇴직연금을 아직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만 대상으로 해, 이미 도입한 사업장이나 노동자의 견해는 담기지 않았다.
결과는 두 갈래다. 의무화가 부담된다는 응답이 52.5%, 매우 부담된다는 응답이 15.6%였다. 한편 의무화까지 필요한 준비 기간으로 3년 이내를 꼽은 응답은 80.1%였다. 고용노동부는 이 수치를 근거로 의무화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비판은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현장 단체의 우려는 현금흐름에 모인다. 소상공인연합회 차남수 정책개발본부장은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가운데 직원 급여를 주는 것도 어려운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매월 얼마씩 퇴직연금을 떼어내면 자금 유동성은 더 제한적”이라고 했다. 3~6개월 근속자가 많은 곳은 퇴직금을 지급한 경우 자체가 적었다며, 모든 사업장에 일괄 적용하는 것은 “공급자 중심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영세 업계 안에서도 결이 다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유예를 요구해 3년 순차 시행을 관철했다고 밝히면서도, 대출 등 피해를 줄일 방안은 더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외적립을 긍정적으로 보는 영세 사업주도 있어서” 각 사업장의 여건을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세 사업장이라고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일보 사설은 영세 사업장의 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정부가 “충분한 재정·융자 지원책”으로 제도 안착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내놓은 지원은 아직 정부안 단계다. 2027년 정부안에 적립금 매칭지원 60억 원과 경영자금 융자비용 보전 62억 원 등 총 122억 원이 새로 편성됐다. 매칭지원은 30인 미만 중소기업이 의무화 시점 이전에 조기 도입할 때 최저임금 130% 미만 근로자의 부담금 10%를 사용자에게 지원하는 것이다. 융자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이 신규 도입하고 1개월이 지나면 대출금리 2%포인트를 이차보전한다. 30인 미만 사업장 수수료는 30인 이상 기업에 적용하는 요율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낮추고, 푸른씨앗은 최초 가입 3년간 수수료를 면제한다. 모두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야 확정된다.
기금형 도입에 운용 경쟁 축도 바뀐다…12월 국회가 관문
의무화가 가동되면 적립금은 더 커진다. 2025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4조 원으로 전년 말 431.7조 원보다 69.7조 원, 16.1% 늘었다. 방안에는 이 돈을 굴리는 틀을 바꾸는 기금형 도입도 들어 있다.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세 유형이 제시됐고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적용된다. 운영 주체는 인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노동부 장관이 인가하고,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장치도 담겼다.
운용업계 바깥의 시각은 중소기업 쪽에 쏠렸다. 영주닐슨 성균관대 교수(한국퇴직연금데이터 대표)는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낮추고” 개별 근로자가 하기 어려운 자산배분과 위험관리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연금 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특히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장 경쟁의 무게중심이 옮겨 간다고 짚었다. 상품 판매나 단기 수익률 경쟁에서 “지배구조, 자산배분, 위험관리, 비용 및 장기 운용성과”를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기대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도 있다. 노사정 논의에 참여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논평에서 기금형의 손익이 전적으로 가입자에게 귀속되는 만큼 “과도한 기대감을 조성하기보다는 투자위험 관리와 가입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방안에는 국민연금공단의 기금형 참여가 담기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참여 방식과 범위를 두고 이견이 있어 입법 과정에서 조율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확인할 관문은 세 가지다. 11월에 나올 개정안 조문에서 자동가입 탈퇴 기간 같은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 2027년 정부안 122억 원이 국회에서 확정되는지다. 노동자가 알아 둘 점은 두 가지다. 기금형으로 운용한 손익은 가입자에게 귀속되고, 이미 쌓인 과거 근속분은 소급 적립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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